방문자수

전체 : 201,516
오늘 : 45
어제 : 91

페이지뷰

전체 : 3,603,081
오늘 : 251
어제 : 1,584

[성서와 함께]2006/10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위령성월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2003년 8월 청년성서모임 341차 마르꼬 연수를 받았습니다. 임병헌 신부님의 구수한 강의와 수지성모교육원의 조용한 환경이 잘 어울렸습니다. 창세기 연수에서 사랑을 느꼈고, 탈출기 연수에서는 열정과 추진력을 받았으며, 마르꼬 복음 연수는 성숙된 신앙을 생각하는 연수였습니다. 3박4일을 정리하는 파견 미사에 아내와 제자들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기다리는 세상은 정말 험난한 세상이었습니다. 핸드폰을 다시 켜서 처음 걸려온 전화는 병원 전공의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공의 2년차이던 재훈 군은 여름휴가를 받아 강릉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갔는데 사고로 익사한 것이었습니다. 

축제와 같은 파견미사에서 나는 이 끔찍한 사고를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인사를 나눈 후 연수원을 떠나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면서 아내에게 사실을 알렸고 바로 고속터미널로 갔습니다. 그리고 강릉으로 갔습니다. 빈소가 차려진 상가에 문상을 하는 일은 수도 없었지만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죽음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동료 전공의 2명과 고인의 친척 1분이 도착하였고 영안실 직원 그리고 경찰이 전부였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을 당한 우리에게 놀라움과 분노, 의혹과 비탄, 감정과 이성, 도덕과 정의, 예절과 사랑 모두 뒤엉켜 있을 뿐 아무런 개념도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죽음이 있을 뿐 아무 말도 항의도 통곡도 없었습니다. 

새벽 2시쯤 그의 부모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우선 죽음이 사실인지 확인하였습니다. 영안실 직원과 경찰이 조사를 하였지만 왜 죽었는지 누구 때문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실만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습니다. 죽음이후 아무도 없던 혼돈의 시간 6시간, 가족이 오기 전의 4시간 그리고 그 이후 2시간. 반나절 혼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빈소를 만드는 일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죽음을 인정하고 빈소를 차리는 인간의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빈소에 촛불을 켜고 사진을 준비하고, 조화를 주문해서 양 옆에 놓고, 향불을 피웠습니다. 


2003년 8월 3일 오후 재훈 군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따라서 아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미소를 잃지 않던 재훈 군을 기억하는 우리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그의 죽음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재훈 군은 아버님과 어머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바르게 살아가라는 부모님의 가르침과 몸으로 베푸시는 부모님의 사랑은 재훈 군에게 큰 스승이시었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던 그의 표정은 그의 부모님을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학문의 길을 가는 것은 남을 따르는 길이면서도 동료와 선후배를 이끄는 길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치료법을 꿈꾸며 학문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없는 그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된 것도 새로운 것을 찾던 그의 외로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누구는 병으로 죽고, 누구는 죄를 지어서 죽고, 누구는 돈이 없어서 죽고, 누구는 남을 위해서 죽고, 누구는 남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혼돈스러운 죽음의 질서 앞에서, 도대체 왜 그에게 그 죽음이 왔는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그를 왜 데려가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혹시 우리는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재훈이의 죽음이 왜 우리에게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죽음의 질서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재훈이의 영혼이, 우리를 바라보며 짓고 있는 그의 미소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 무엇일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31년 살다가 우리보다 먼저 떠난 재훈 군이 마지막 남기는 말은 무엇일까요?

비탄에 빠져 헤매는 우리의 나약함일까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죽음을 우리에게 내린 세상의 야속함에 대한 분노일까요? 어차피 죽을 인생 적당히 즐기며 살자고 하는 현실도피일까요?

재훈 군은 분명히 말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힘내세요. 동생 그리고 가족, 동료 그리고 친구 선후배 여러분. 당신들은 진정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을 더 멋지게 살아보려고 했던 재훈이의 욕심을 용서해 주세요.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 재훈이의 욕심과 노력을 좀 더 의미있게 완성해주세요.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죽음 아닙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완성시키려는 또 다른 사랑이랍니다.

우리들의 헝클어진 자세를 가다듬고 좀 더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의 희생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고 열심히 살 것입니다. 그의 꿈과 십자가의 인생을 우리가 나눠지는 것뿐입니다.  


직업이 의사이고 그 중에서도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병리과 의사인 후배의 죽음에 대하여 부검이 시행되었습니다. 부검 역시 동료 병리과 의사가 집도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병원의 일손도 더 부족하고 죽음과 생명을 연구할 의사 한사람이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것은,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profile

서초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친구

오픈액세스/ 학술정보/ 도서관/ 학술지편집인 활동가

심장박물관/ 심장 혈관 3차원 큐레이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이사장

대한심장학회 심장병리연구회 회장

 

Jeong-Wook SEO, MD
Professor, Department of Patholog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Chairman, Woochon Cardio-Neuro-Vascular Research Foundation

President, Cardiac Pathology Study Group, Korean Society of Cardiology

Curator, Heart Museum, 3d Heart & Vessels

Activist, Open Access/ Scholarly database/ Library/ Scholarly Journal Editor

Friend, Social Welfare/ Volunteer Communities


Tel: +82-2-740-8268
Mobile: +82-10-2666-8268
E-mail: jwseo@snu.ac.kr

http://openandcreative.net

http://apcis.kr

http://woochon.org

http://heartmuseum.kr

http://cardiacpathology.kr

엮인글 :
http://openandcreative.net/xe/catholic/14599/cfe/trackback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서리풀]2001/12 결혼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file

천주교 서초동 교회 [서리풀] 2001년 12월 결혼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서정욱 (미카엘, 의사)

[성서와 함께]2006/12 정의, 양심, 윤리

[성서와 함께]2006/12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정의, 양심, 윤리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거짓을 말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되고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한다. 법과 원칙에 추가하여 ...

[성서와 함께]2006/11 위령성월

[성서와 함께]2006/10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위령성월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2003년 8월 청년성서모임 341차 마르꼬 연수를 받았습니다. 임병헌 신부님의 구수한 강의와 수지성모교육원의 조용한 환경이 잘 어울렸습니다. 창세기 연수에서 사랑을 느꼈고, 탈출기 연수에서는 열정과 ...

[성서와 함께]2006/10 로사리오 성월

[성서와 함께]2006/10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로사리오 성월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신경정신과에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흐름이 다음과 같다고 가르친다. <그럴 리 없어> <그러면 안돼> <그럴 줄 알았어> <오히려...

[성서와 함께]2006/7 심장의 창조

[성서와 함께]2006/7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심장의 창조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탄생시키는 데 1주일 걸렸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시며 사람의 병을 고쳐주셨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얼핏 보면 아주 ...

[성서와 함께]2006/8 태중의 아기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file

[성서와 함께]2006/8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태중의 아기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태중의 아기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아무리 되뇌어도 지나치지 않는 말씀의 깊은 뜻을 조금 들추어 보자. 40주간의 임신을 마치고 태어나는 아기의 우렁찬 울...

[성서와 함께]2006/9 장애인은 살아 있는 순교자 file

[성서와 함께]2006/9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장애인은 살아 있는 순교자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우리나라는 103위 성인께서 지켜주시는 축복받은 나라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성지들과 피정의 집에 가면 그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름 없는 순교자 묘역에는 그분...

응징의 시대.

정규재TV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인, 이러다 벌 받지 않겠나?" 6월20일 공개된 이 동영상을 본 느낌과 지난 주말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한쪽에서는 농촌의 심각한 가뭄으로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애써 받아 놓은 빗물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박수치는 환경론자들이 행태는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것....

CCKOREA 웹사이트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Creative Commons 저작권 정책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