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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함께]2006/12 과학자가 보는 성경이야기

정의, 양심, 윤리


서정욱 미카엘 (교수, 서울대 의대 도서관장)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거짓을 말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되고 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 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한다. 법과 원칙에 추가하여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베푼다.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자율적인 양심의 판단에 사회이익을 위한 타율적 구속이 추가된 것이 윤리이다. 구속이라고는 하지만 강제적인 것은 아니고 때로는 판단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현실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그 잣대를 스스로 만들고 자유 의지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우리는 그 현실을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책가방에는 30cm 대나무 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 대나무 자는 길이를 재는 것은 물론이고 줄 그는데도 쓰고 사과를 깎을 수 있었고 칼싸움 놀이도 했다. 길고 짧음과, 옳고 그름을 재는 잣대가 곧바로 칼이 될 수 있었다.  


과학자와 정치인 모두 잣대를 가지고 일한다. 정치인의 잣대는 고무줄 잣대이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고 급히 만든 어설픈 논리가 고무줄 잣대를 만든다. 시대가 바뀌면 그 잣대는 달라진다. 과학자는 비교적 표준화된 잣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막을 보면 과학자들도 썩 좋은 잣대를 쓰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과학의 진실도 시대에 따라 변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잣대를 마구 늘이고 줄이는 과학자도 있다. 


지난 해 12월 우리나라가 세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생명 과학 지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H 교수와 A 교수의 경우는 사람마다의 잣대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H 교수는 학문에 대한 열정, 성공을 향한 추진력, 대중적인 지명도를 확보한 과학자였다. 그에 대한 일반 대중과 정치인들의 기대가치는 하늘 가까이 갔고 많은 난치병 환자에게는 희망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정의 뒤에는 욕심이 숨어 있었고, 양심은 잠시 휴가를 떠난 상태였으며, 사회적 감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과 과학 단체의 윤리적 역할도 마비되어 있었다. 그의 연구에 대한 비판은 주목받지 못했고 성공처럼 보이는 업적과 함께 거짓이라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암세포는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H교수는 아직 그의 잣대를 쓰고 있다.” 

“A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바탕으로 H교수의 연구에 참여하였다.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생명과학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으며 연구 동료의 진실을 믿었다. 그러나 H교수팀의 연구에 돌이킬 수 없는 거짓이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동안 의사와 연구자로써 쏟은 열정과 환자에 대한 진실한 노력조차도 거짓으로 의심받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 A교수도 아직 그의 잣대를 쓰고 있다.” 


과학자의 정의를 단순히 표현할 수는 없다. 진리를 탐구하는 깨끗한 직업인으로 보이는 과학자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다. 안 되는 실험을 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실험실 안전 규칙과 폐기물 규정을 어기기도 한다. 실험결과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노력과 거짓 실험의 한계가 때로는 모호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난하고 배고파도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거나 샘플을 바꿔치기 해서 동료 연구자를 속이지는 않는다. 창의력과 정직함을 자부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과학자들은 스스로의 잣대로 판단하여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과학자의 연구가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의사가 존경받던 시절, 의사는 양심으로 판단하여 연구를 하였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였다. 혈액검사를 할 때 피를 조금 더 뽑아 보관하고, 수술을 하면서 떼어낸 조직으로 연구를 하였다.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연구 윤리는 자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의 양심을 믿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고 급기야는 타율에 의한 윤리라는 새로운 잣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연구자의 양심에 맡기지 말고 동료 연구자와 환자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서 동료의 심사를 받고 환자에게 알리는 절차를 한 후에 연구를 해야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조금 생소한 논리이지만 과학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만큼 생명의 가치는 높아졌다. 


과학과 의료 모두가 철저한 책임과 윤리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특히 의사는 높은 도덕심과 함께 책임의식을 요구받는 직업이다. 때로는 환자나 보호자를 대신하여 그들의 생명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암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암이라는 말을 환자에게 하지 말아 달라는 보호자의 부탁을 받으면 고민을 하다가 거짓말을 한다. 환자에게 좋은 치료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다. 확인되지 않은 치료법을 소개하는 것은 실망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믿고 책임을 지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과학과 의료에서 더 없이 중요한 덕목이다. 


H교수 사태에서 보듯 일부 비양심적인 과학자는 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일부 의사들은 숨겨진 욕심과 오만으로 환자의 마음에 상처를 깊게 하기도 한다. 거기에 편승하여 언론의 무책임한 마녀사냥,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기회주의자들의 직무 태만과 눈치 보는 행동이 사회를 삭막하게 한다. H교수 사태를 통해서 우리가 생명과학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지식은 단편적이고 포괄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리들의 오만과 아집을 키우고 과학과 의료에 대한 신뢰를 허물어 우리 사회를 황폐하게 하고 있다. A교수는 억울하다고, 좀 더 완벽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갈등과 불신을 키울 뿐이다. 


정의는 옳고 밝혀야 한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은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양심은 편리하고 흐뭇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양심 또한 고무줄 잣대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율적인 윤리라면 모를까 타율적인 윤리는 정말 싫다. 인간이 만든 윤리라는 잣대들은 대개 무책임한 기회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무줄 잣대의 세계를 사는 우리들은 그들의 정의와 양심, 윤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주님의 잣대를 준비하자. 창조주 앞에 겸손함을, 생명체 앞에서 진실을, 인간 앞에서 사랑을 가진 그런 잣대가 우리 윤리의 바탕이 되어야 평화가 있다. 


profile

네이버 학술정보 / 심장박물관 / 심장 병리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이사장

대한심장학회 심장병리연구회 회장

 

Jeong-Wook SEO, MD
Professor, Department of Patholog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Chairman, Woochon Cardio-Neuro-Vascular Research Foundation

President, Cardiac Pathology Study Group, Korean Society of Cardiology

Naver Academic / Heart Museum / Cardiac Pathology 


Tel: +82-2-740-8268
Mobile: +82-10-2666-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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