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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글 001.jpg 세월의 한순간을 되돌아 보면서


글 서정욱


아가신 분의 육신을 조사하는 것을 검안, 조사를 위해 해부하는 것을 부검이라고 한다. 의과대학 1학년 때 하는 교육으로서의 시신 해부는 부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부검을 하여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법적 시비를 가리는 것을 법의부검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분을 부검하는 일은 법의부검과는 달리 의학적 연구와 교육, 그리고 의료 행위의 결과를 확인하고, 여전히 궁금한 생명의 신비를 밝히는 과정이다. 부검을 한다고 해서 생명과 삶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의 한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할 만하다.


20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한 여학생

  내가 병리의사로서 심장병을 공부하고 심장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러나 그 축복의 뒤에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한 여학생이 있었다. 결핵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진 그는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였고 나는 25세의 1년차 전공의로서 그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었다

  한여름 어느 더운 날, 부검실에서 그의 심장을 해부하면서 나의 인생은 결정되고 있었다. 결핵 환자였지만 심장병 그리고 부정맥으로 사망하였고 그 이후로 나는 석사학위, 박사학위 뿐 아니라 교수가 되어서도 심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 여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은 심장질환 부검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 해에는 유난히도 선천성 심장병으로 죽은 아이를 해부하는 일이 많았다. 아이를 잃고 그 아이를 부검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부모에게 극심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검은 의사들에게 더 없이 소중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제 모습대로 태어나고 성장한 어른 심장의 오묘함에 감동하던 나로서는 아이들의 심장을 보는 것이 소름 돋을 만큼 즐거웠다(?). 

  어른 심장에 비할 때 아이들의 심장은 작고 귀여우며 아름답다. 어른 심장은 아무리 병이 있다고 해도 그 모습이 그 모습인데 선천성 심장병 아이의 심장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 만하다. 심방과 심실로 구분되며 좌우측으로 나눠지며, 그들 방 사이에는 판막이 있어 흐름을 조절하는데 선천성 심장병은 이런 심장의 구석구석에 다양한 구멍이 있거나 좁아지고 넓어지고, 때로는 좌우측이 뒤바뀌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하여 치료가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심실 중격 결손은 좌우측 심실 사이에 있는 벽에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혈관 전위증은 대동맥과 폐동맥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도 방이나 문의 위치가 바뀌면 바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사람의 심장에서 위치가 바뀌고 문이 잠긴다는 것은 부부싸움 정도가 아니라 피가 가지런히 흐르지 못하여 소용돌이 치고, 쿵쾅쿵쾅 소음을 내며 심장이 요동을 치며, 급기야는 멈추기도 한다. 심장이 멈추면 숨도 거두어지고 뇌와 생각도 멈춘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생명은 정지되고 영혼은 찾기 어려운 곳에 감춰진다.


부검을 통한 또 하나의 사랑, 장기기증

  1984년 당시 대통령 부부가 나서서 우리나라 심장 수술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선천성 심장병 수술이 아직 초보단계인 시절이어서 수술하다가 죽은 환자가 많았다. 심장 부검을 간절히 원하는 의사는 흉부외과 의사였다. 부검환자가 죽으면 슬금슬금 도망치는 의사도 많은 시절에도 흉부외과 의사들은 용감하였다. 그는 수술하기 전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성스럽게 설명을 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걱정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을 하였다. “만에 하나 아이를 잃게 되면 아직 살아있는 다른 심장병 아이들을 위해서 부검을 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는 수술이 성공적이지 못하여 사망을 선고하게 되면 다시 한 번 더 보호자와 진심을 담은 면담을 한다. 환자의 죽음을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보호자를 위로하고, 다시 한 번 어려운 말을 꺼낸다. 그렇게 하더라도 보호자의 40% 정도만 부검을 승낙 하고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교의 영향으로 시신을 화장하기보다는 매장을 선호하며 부검은 말도 못 꺼낸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신의 90%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부검에 대한 생각들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가톨릭의대에서는 학생 실습용으로 기증받은 시신이 충분하여 다른 대학에도 제공하고 있으며, 한 마음 한 몸 운동 본부에서 사후 장기 기증이나 시신기증에 대한 서명을 받는데, 특히 김수환 추기경님의 각막 기증 이후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다.

  병원 부검은 병리과 의사가 하고 병리과 의사로서 꼭 필요한 과정 중의 하나이다. 부검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도 많지만 심장은 흉부외과, 심장내과, 소아과, 영상의학과 의사들 대상의 교육 자료로 쓰인다. 1984년 부검 심장을 이용한 의사 교육을 시작할 당시에는 교육용으로 쓸 만한 심장이 20여개 정도였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20년 이전까지 거슬러 과거의 부검 기록과 적출 장기 보관 창고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50여개의 심장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부검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부검을 담당한 의사에게 설명을 하고 검체 기록용 사진 촬영도 하면서 심장을 얻었다. 모든 심장은 번호표가 붙어 있어 누구의 심장인지 기록을 찾을 수 있으며, 해마다 의사들이 모여 연구 집담회를 하고 있다. 크고 작은 심장, 병원 부검과 법의 부검 등 다양한 경로로 얻은 심장이 500여개가 되며, 하나하나의 심장마다 기증자 분들의 생명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부검을 통한 또 하나의 사랑이 장기기증이다. 장기를 기증한다는 것이 참으로 거룩해 보이지만, 망자의 시신을 해부하는 부검을 통하여 그 장기가 얻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기증자가 사망한 후 가능하면 빨리 시신에 칼을 대어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콩팥과 간 등 장기 이식도 하고, 뼈와 심장 판막도 떼어내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이용된다.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콩팥과 간, 심장, 폐 등의 이식을 받지 못해 삶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스스로 생명이라는 겨자씨를 금고에 감추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무수한 생명

  우리 가족은 1990-1992년 영국에 있었다. 값이 싸고 맛이 좋은 꼬리와 사골을 사서 곰탕을 해 먹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시절이었고 그 기간 중에 영국에 있었던 사람은 헌혈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50번 이상 헌혈을 열심히 하던 나에게 헌혈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과도 같았다. 우리 가족이 헌혈 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 혈액 수급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지만, 과연 과학적으로 옳은 판단인지 의심이 되고 불만스러웠다

  인간의 공포로 인하여 나타나는 오만이 생명을 파괴하는 현장은 또 있다. 선천성 심장병의 치료 기술이 발달하여 많은 어린이가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선천성 기형의 조기진단 기술도 함께 발달하였다. 아이를 가진 산모는 산전 진찰을 통하여 건강한 아이를 골라 낳기 시작하였다. 건강한 아이를 골라내는 일은 병아리 감별사와 같은 기술을 가진 의사에게 맡겨졌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태어나지 못하는 아이의 심장에 정말 심장병이 있었는지, 심장병이 있더라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아니었는지 알 수가 없다. 확인하기 위한 부검이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허무하게 사라져간 생명이 무수히 많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생명의 소중함은 의료 기술을 발전시켰고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방역 활동과 치료제 개발을 이루어냈다. 전문가들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많은 의학자들이 토마스처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지는 못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들의 영광은 빛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 못지않게 노력은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성공을 눈앞에 둔 채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영혼이다

  나에게 심장을 가르쳐준 20세의 여학생은 오래전에 잊혀지고 말았지만 그의 심장은 다른 생명을 살리는 지식이 되어 살아 있다. 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살리지 못한 흉부외과의사의 아쉬움이 그 죽어 간 아이들의 부검을 통하여 의료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다른 많은 아이들에게 고귀한 생명을, 그들의 가족에게는 한없는 행복을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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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이사장

대한심장학회 심장병리연구회 회장

아시아태평양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부회장

 

Jeong-Wook SEO, MD
Professor, Department of Patholog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Chairman, Woochon Cardio-Neuro-Vascular Research Foundation

Executive Vice-president, Asia Pacific Association of Medical Journal Editors (AP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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