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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나의 직접 친구는 아니다. 아들 친구의 아버님이니 나의 친구라고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는 아니다. 나에게는 반갑지 않은 친구였다. 

물론 처음에는 반갑게 맞았었다. 그런데 세월이 갈 수록 피하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분노가 먼저인지 관계와 환경이 먼저인지 알 수 없으나 세월이 갈 수록 분노가 커지고 관계는 나빠졌던 사이이다. 

[지금 이 글은 확인된 사실보다는 추측에 근거하고 있다. 오히려 소설에 가깝다.]


아들 친구는 속칭 운동권 청년이라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실에 불만이 많고 그 불만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불만을 적극 표현하였다고 들었다. 사실 현실에 불만이 큰 사람은 매우 많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이상의 불만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렇다. 단지 표출하는 방식과 정도가 다를 뿐이다.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이 4가지 쯤 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운동권이 되어 현실에 저항하고, 어떤 이는 환경운동가라는 고상한 타이틀을 붙이고 여기저기 문제점을 찾아 다니며 고자질을 즐긴다. 어떤 이는 우울증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실행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우울증 부류에 속하지 못하지만 표출형도 아니다. 내가 그런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들보다 내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위로, 그리고 고통을 잊어버리는 망각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친구의 현실 불만이 남들보다 더 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운동권을 택했다. 

30대 초반의 그 젊은이에게 몹쓸 병이 생겼다. "척추에 암이 발견되었는데 다른 곳에서 전이된 것인 듯하다."는 의사의 소견. 진단이 확실하고 치료 방법이 분명하다면 치료하든 포기하든 할텐데 이 경우는 달랐다. 솔직히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는데 암이 척추에 있다는 것이다. 그 것이 의사가 말하는 솔직한 진실이다. 의사는 모르면서 안다고 하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척추의 병이 하반신 마비를 시킬 수 있으니 우선 암을 제거하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것이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는 못하며, 장기적인 결과가 어떨지 자신이 없다고도 했을 것이다. 


그 젊은이로서는 그 나이에 암이 있다는 것에 분노하였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사의 솔직함을 무능과 거짓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의 아버님도 의심이 많은 성격이어서 의사 말을 믿지 않았고 수술하기로 예약된 날에 입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어서 그들만의 치료법을 개발하여(?) 치료 하기로 하였다. 민간 요법이라는 치료법으로 시골에서 요양하겠다고 하고는 병원과 연락을 끊었다. 

의사는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의무기록에 그런 사실을 남길 뿐이다. 나는 어찌해야 했을까? 나는 그 아버님께 화를 냈다. 그 것은 아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들 친구의 아버님께 말했다. 의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는 의사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병원에서 의사가 그런 말을 한다면 무시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연락해서 병원에 오도록 하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그들의 집에 쫓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치료 결과를 보장하겠다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 밖에는. 


좌파이건 우파이건 강직한 성격을 가진 운동권이나 환경운동가 또는 그들처럼 자신감과 논리가 분명한 분들은 때로는 위험하다. 해당 분야 전문가인 의사나 환경 분야 등 해당 분야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말을 더 신뢰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의사의 말을 따르지 않는 환자를 종종 본다. 그래서 의사들이 싫어하는 환자의 직업군에 그분들이 속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환자가 우울증이나 나와 같이 소심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우선 의사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치료가 되지 않아도 원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포기했을 것이다. 의사가 거짓말을 해도 진실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만약에 의사와 환자가 모두 운동권 출신이었으면 어찌 했을까? 운동권 의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운동권 환자를 붙잡아 치료를 하지 않았을까? 거짓말을 해서라도 환자에게 치료된다는 확신을 주고, 강제로라도 환자를 데려다가 치료했을 지 모른다. 환자가 치료되지 않는다면? 한번 더 거짓말을 하면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 잘못된 것도 아니다. 


아들 친구와 그 아버님은 1년 정도 연락을 끊은 후 다시 병원에 찾아 왔다. 상태가 악화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의사는 기분 나빴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환자와 가족을 경계했을 것이고 냉정하게 대했을 것이다. 그 런 태도가 가족에게 불편했을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진료를 받은 후 나에게 찾아와 불만을 털어 놓는다. 나 역시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 잘 해줘야지 생각하다가도, 혹시라도 실수를 하여 오해를 받을까봐 경계를 하게 된다. 


환자가 좋아지고 치료가 잘될 때는 이런 문제나 상황의 변화가 대수롭지 않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냥 위로와 축복, 희망적인 말만 하면 되니 의사에게도 편안하다. 그러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마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들은 천사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분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환자와 보호자는 분노와 절망이다. 온갖 나쁜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의사들이나 병원 직원 모두가 하나 같이 나쁜 사람들로 보인다. 그런 극심한 고통속에서도 보호자와 환자들은 잘 이겨낸다. 운동권 환자들 조차도 병원에서 그런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느라고 고통이 더 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불 같은 성격을 가진 그 분들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의 아들 친구와 아버님을 생각하니 나 역시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무슨 천사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그들의 삶은 치유하겠다고 나서겠나? 나는 그냥 피하고만 싶었다. 나도 나 자신의 고통을 다 감내하는 것이 버거운 인생인데,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함께 나누자는 것이냐? 그런 생각까지 들면서도 나의 마음은 괴로웠다.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도 햄릿 처럼 번뇌한다. 우울증 성향이라면 자살을 생각하겠지. 다행히 나는 괴로운 일을 잊고 피하는 능력을 타고 났다. 차가운 가슴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고통을 이해는 하지만, 나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아량이 부족하다. 


안타깝게도 아들 친구는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심해져서 일상 생활이 매우 어려워 졌다. 정신을 멀쩡하다는 것이 그나마 축복이다. 차라리 의식마저 마비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이 축복이다. 그래야 고통을 잊을 수도 있고 분노를 피할 수도 있다. 아들은 그나마 잘 이겨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님에게는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젊은 친구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건강하셨던 분이 사고로 돌아가셨다고는 하니 너무 충격적이다. 추측은 가지만 그렇지 않았기를 바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주셔야 하는 아버님께서 아들의 하반신 마비는 남겨둔 채 세상을 달리하셨다. 


누가 그 아버님을 원망하겠는가?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었고, 참 어려운 삶을 사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은 많다. 아들 병에 대해서는 의사가 권하는 치료를 다 받도록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아들이 하반신 마비로도 마음의 평화를 찾고 불편하지만 평화의 기도를 바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쉽다.  


병원에서 권하던 치료를 받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라는 질문에 대하여. 

내가 운동권이었다면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대답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 내려 놓고 편히 쉬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는 않답니다. 

당신의 아들은, 하반신 마비가 있지만 제 명을 다하고 인생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말을 나는 하고 싶습니다. 


profile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우촌심뇌혈관연구재단 이사장

대한심장학회 심장병리연구회 회장

아시아태평양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부회장

 

Jeong-Wook SEO, MD
Professor, Department of Pathology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Chairman, Woochon Cardio-Neuro-Vascular Research Foundation

Executive Vice-president, Asia Pacific Association of Medical Journal Editors (APAME)



Tel: +82-2-740-8268+82-2-740-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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